글, 작문

[자작소설] 모비딕

J허브 2022. 6. 7. 16:03
반응형


모비딕

거대한 고래는 보인 적이 없었다.
다만, 거친 풍파를 이겨낸 노련한
선원 여럿이 그녀석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만 
전설처럼 돌고 있었다.

맞은편 위태롭게 우뚝서있는 석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빗줄기가 거새질 때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그녀석의 산과같은 등줄기가 해일처럼 드러난다는 말이 있었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얼마나 거센지
입고 있던 비옷위를 눈 뭉치로 두들기듯 했다.
매일 시간을 알려주던 이름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마저 굵은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런 태풍이 몰아치는 험한 날씨임에도
항상 같은 루틴으로 출항을 준비하던,
선장의 얼굴에는 긴장이라는 것을 표현할 줄 모르는 듯, 평소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왜 모비딕을 찾으시는 건가요?, 지난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인가요?"
'..... 복수심 같은 감상적인 마음은 우리 같은 험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소리지'
"그럼 왜 그렇게 모비딕에 집착하시는 거죠?"
"그녀석이 우리에겐 꿈이었으니깐"
"자부심 같은 건가요?"
"힘들땐 항상 나중에 모비딕을 잡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버텼지,
지금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 단련을 해놔야 그 녀석을 만났을 때 승부를 볼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하면서 말이야"


"삶의 목적 그 이상이군요"
"이제 목적이라기보다는, 은인이자 동반자 같은 녀석이 되어버렸지, 
힘들 때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 준 놈이니까, 풀에 죽어 있어도 그 녀석 이름만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창살 쏘는 연습을 해댔으니"
"어쩌면 정이 들어서 잡지 못하겠는데요?"
"솔직히... 만나면 창살을 쏘기보단 긴 세월 동안 고마웠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네, 
그놈은 지금도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을 테니깐"



반응형

'글, 작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작소설] 상상 죄책감  (0) 2022.06.09
[자작에세이]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5분  (0) 2022.06.08
[자작에세이] 비가오는 밤  (0) 2022.06.06
[단편소설] 불행중독  (0) 2022.06.05
[자작시] '이상'의 요절  (0) 2022.06.04